이 가을이 다 가기 전 오대산 단풍길을 걸었다.
차를 진부에 두고, 버스를 타고 걸어갔다.
주말에 내린 비로 절정에서 조금 사그라진 색을 띄고는 있었지만,
아직 그 자태가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손색이 없다.
영감사로 걸어가는 길. 대로변에서 1Km정도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가을 단풍 물결이 바람에 휘날린다.
낙엽 떨어진 흙길.
올 해 내가 이 곳을 찾은 것이 네 번째.
돌탑 하나 더 올려 놓았다.
가랑잎이 바람에 스삭거리고, 내 발에 바스락거리고,
연리지 나무? 뿌리는 다른 것 같지는 않지만 올라가는 서로 다른 가지가 붙었다.
우하~~ 정말 찬란한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햇볕을 받아 더욱 색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단풍.
노랗게 물든 잎들...
발효차를 들고, 영감사 스님과 차 한 잔하려고 한다.
ㅅ
영감사의 텃밭. 나중에 여쭤봤는데 김장배추가 300포기쯤 된다고 하셨다.
산사를 찾아, 스님을 찾아... 저 멀리 스님께서 부지런히 움직이시는 모습이 보인다.
돌담에 담쟁이풀들.
드디어 영감사에 이르렀다.
늘 느끼는 감정. 이 순간의 느낌은 서로 다른 계절에 왔지만, 늘 똑같다.
걸어서 올라와야만 느낄 수 있는 것이겠지.
편안함, 온화함, 고즈넉함, 안도감, 그래서 행복감.
내가 영감사를 좋아하는 것은 이 길따라 오는 그 길이 좋고, 그
렇게 올라서서 이른 산사의 앞마당이 내게 주는 행복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또 하나, 바로 이 의자.
의자가 주는 행복감은 또 다른 것이다.
위안처(?), 빈 의자로서의 벗, 그리고 내가 앉았을 때의 편안한 휴식처.
영감사에서 이 의자에 앉아 마당 저편의 산을 바라볼 때 오는 고즈넉함은
마치 선계에 머무르는 듯 시간이 잠시 멈춰진 것 같다.
영감사에 오르려면, 차를 가급적 좀 더 먼 아래에 세워두고, 걸어와야 한다.
그리고, 이 마당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의 느낌을 가져본다.
다음은 저 빈 의자에 잠시 앉아 본다.
도시에서 그 어떤 수련을 한다고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 것보다 단 몇 분으로 엄청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통수에서 내려오는 오대산 물.
스님께서 우리가 갖고 간 발효차를 약차라고 하시면서 손수 우려주셨다.
와~~, 우리차가 여기 와서 마시니 더욱 빛이 났다.
우리는 차를 우려내는 사람의 기운으로 더욱 맛있어졌다고 하였는데
스님께서는 시공간을 저 멀리부터 가서 설명해 내려오셨다.
중국에서도 우통수가 있다고 한다. 그 물은 장강으로 흘러들어와도 물이 무거워 아래로 따로 흘러간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가장 맛있는 물은 한강인데 그 원류가 바로 오대산 우통수라며
차맛은 물이 가장 중요하고, 더불어 차를 만드는 사람의 기운도 중요하다고 향이 좋다고 하셨다.
차마시며 내다본 풍광.
오가피나무가 엄청 컸다.
효소담그라고 오가피씨를 따가라고 하셨다.
손이 자라는 곳만 따고, 나머지는 그냥 두었다.
저렇게 두면, 까마귀들이 날아와 먹는다고 한다.
뒷산에 단풍이 시들어가고 있다.
영감난야에서 영(靈)은 혼령의 의미가 아니라 마음의 영을 뜻하는 것으로
그 마음이 감(鑑), 즉 거울에 비출 때 각양각색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라고 하셨다.
노보살님은 마당의 국화를 조금 손질해 와 주방옆에 꽂아두셨다.
배도 익어가고 있다. 스님께서 따서 먹으라고 하셨다. 옛날 종자나무인데 맛있었다.
점심 공양도 정갈하게 잘 대접받고 스님과 짧지만, 긴 여운을 남기고 돌아섰다.
물 위도 단풍, 물 아래도 단풍이 장관이다.
평일인데도 관광차들이 즐비하게 다니고 있는데 주말에 내린 비로 흙먼지는 없었다.
강가에 여름 손님들이 탑을 세워둔 것일까?
관절에 좋다는 접골목열매.
오가피씨를 얻어가는 길. 5Km를 걸어 월정사입구 버스정류장까지 가는 길이다.
버스를 기다리며 글을 적는 남편.
오대산 영감사 노스님 얼굴
소년같네
통나무같은 느낌에
해맑은 눈망울
얼굴보는 것만으로
한줄기 시원한 바람
가슴을 스쳐가네.
"살아도 살아도 좋아요."
스님께서 처음 이 곳 영감사에 오실 때는 그렇게 오래 계실려고 하지 않았는데
벌써 20년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영감사에 대한 예찬을 하셨다.
난 이 표현이 참 좋았다.
나도 모든 것을 내려놓으면 이 말을 편안히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갈한 긴 여운을 갖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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