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탄신일을 하루 앞두고, 나는 오대산으로 향했다.
오대산에는 주요 사찰들이 많이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가람이 월정사이다. 허나, 난 월정사보다 월정사 진입로인 바로 여기, 전나무숲길을 좋아한다.
누구나 마음의 평안과 복을 위해 종교를 찾는다. 그러나 부처님을 만나기 전에 이 곳을 통하여 들어가면, 마음의 평안은 절로 얻게 된다.
내가 이 곳에 가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곳이 두 곳 있다.
그 첫 번째가 천문대 가상천문관에 들어가, 의자에 누워 별자리를 관측하는 것이다.
가물가물한 우주 속에서 오로지 별과 나 둘만의 대화를 느끼는 공간이다.
그리고 두 번째가 바로 여기, 오대산 전나무숲 길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면 나는 월정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월정사 앞 전나무 숲 길를 찾는다.
이 곳에 들어서면 절로 눈이 감겨지고, 평안을 얻는다. 그리고 답이 얻어진다.
쓰러진 고목에서도 자연의 기운이 느껴진다. 오래 전에 벼락을 맞아 쓰러졌다고 한다.
간간히 시야의 가장자리에 들어섰다가 다시 사라지며 그림의 여백을 변화있게 장식하는 다람쥐들.
탄허스님의 친필 현판이 일주문을 지키고 있다. 세월에 금박이 많이 해손되었다.
월정사에서 가장 큰 법당인 적광전-적광전 또한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앞 팔각구층석탑. 그 둘레에 연등들이 질서정연하게 걸려 있다.
계속 되는 비로 관광객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지만, 우산들의 행렬은 계속되었다.
월정사 입구.
상원사 서쪽에 위치한 한강의 발원지, 우통수가 이 곳으로 흘러내려 와 오대천으로 내려간다.
공간과 공간이 다시 만나는 곳.
강원도에서 이맘 때면 가장 탐스럽게 피어나는 흰꽃. 돌배꽃.
월정사를 지나, 영감사로 발길을 돌렸다.
영감사가는 흙길. 도로변에 주차하고, 1km정도 산 길을 걸어갔다.
봄비에 새싹들이 고운 연두빛으로 채색하고 있다.
아무도 없는 빈 길을 나홀로 걸을 때의 고즈넉하고 평화로운 느낌, 그 느낌에 젖어든다.
나의 작품. ㅎㅎ
월정사가는 길에는 너무도 많은 인파들이 돌탑을 쌓아두지만,
영감사가는 길은 사람의 발길이 뜸하여 커다란 바위 위에 그 어떤 혹도 달려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장식을 해 두었다. 그 어떤 누군가에게 나는 시작이 되었다.
4년 전에 이 곳에 왔을 때도 이렇게 걸어 올라갔는데 못 보던 박석(薄石)이다.
중간 정도부터 이렇게 박석을 깔아두었다. 예전에 내가 갖고 싶은 길이였다.
흙 길보다 편리하고, 시멘트 길보다 운치있는, 한마디로 기품있는 길이다.
옛날에는 마름과 머슴이 많은 대가집에서 그 많은 하인들을 시켜 마을 어귀부터 박석을 깔았다고 하는데
그걸 생각하면, 기품보다는 사치스런 길인지도 모른다.
영감사 아래에 사각(史閣). 오대산 사고에는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다.
갑자기 세찬 바람에 몸을 가누기 힘들었다. 내가 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주 잠깐만 생각했다.
사고지(史庫址).
세찬 바람이 비바람이였나 보다. 영감사를 올라서니 비가 몰아쳤다.
법당과 요사채, 그리고 왼쪽에 해우소로 구성되어 있다.
해우소는 비탈의 잿간인데 상판이 맨질맨질한 나무로 손질되어 있어 신발을 벗고 들어가도 좋게 되어 있다.
실제로 실내용 슬리퍼도 마련되어 있다.
<영감난야> 영감과 난야을 따로 본다.
영감은 '신령스러운 것은 보이지 않으나, 거울에 비춰서 나타날 때는 각양각색'이라는 어느 스님의 말씀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난야는 범어 발음을 한자로 그대로 옮긴 것으로 '공부하기 좋은 한적한 곳'이란 뜻이라고 한다.
사명대사가 주석(駐錫)하기도 했던 곳이다.
부엌에서 내다보이는 마당. 넙적한 돌이 야외용 차탁으로 손색이 없다.
소박한 옛날 부엌.
마당이 언제나 정갈해 보인다.
요사채에서 내려다 보이는 우물가.
마당가 할미꽃이 비바람에 몸을 자연히 맡기고 있다.
영감사에는 신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공부만 하는 선방인 줄 알았는데 신자를 받기도 하나 보다.
예전에 풍문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월정사에 도력이 높으신 스님이 계시는데 그 분은 영감사에 물러나 계신다는 것을...
4년 전에 이 곳을 찾았을 때 마당에서 채전을 가꾸시다가 일어서서 맞이하는 모습에
남편이 그 말을 전했더니, "그 소문이 헛소문이네요." 하시면서 웃으셨다.
단 5분간의 만남이였는데 남편도 나도 그 이후 아주 오랜 여운을 갖게 했던 스님이셨다.
다시 뵈었는데 한 눈에 알아보았다.
간간히 멎는 비 속에서 연등 전구를 달아들이고, 공양밥도 함께 하고 왔다.
모두가 첨 보는 사람들이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마음으로 통할 수가 있다.
갑자기 내린 폭우로 마당에 물길을 돌리며 분주하게 움직이시던 스님께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한가할 때 차 마시러 오세요"라고 하셨다.
살다보면 인간은 잘난 사람이든 못난 사람이든 모두가 한번 쯤, 아니, 그 이상 외롭다는 걸 느낀다.
누군가를 맞이해주고, 차와 밥으로 그 사람을 맞이하는 것 자체가 보시인 것 같다.
그러나 올 봄 난 누군가를 맞이해주는 것보다 맞이를 받고 싶은 외로움을 느낀다.
스님의 한 마디가 큰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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