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학교 다닐 때 배운 이 시는 불혹의 나이를 훨 넘은 이제서야 그 느낌이 가슴 깊이 파고 든다.
그러니깐 이 시를 지은 작가도 불혹을 넘어야 나올 수 있는 싯구라고 여겼는데
작가는 불혹이 되기도 전에 이런 글을 지었다.
이런 시를 고등학생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무리다.
그래도 한 때 배워둔 것이 인연이 되어 이렇게 다시 찾을 수 있는 것에 만족한다.
한 때 모란과 목단이 같다, 같지 않다를 두고, 목단이 핀 꽃 앞에서 실갱이가 붙은 적이 있었다.
우리 집을 방문한 일본인 남자, 한국인 여자였다.
모란과 목단은 같다.
모란은 봄이 절정에 달하고, 이제는 되돌리 수 없는 여름의 길로 접어들 때
그 어떤 봄 꽃보다도 마음씨 넓은 시골 아낙처럼 큼지막하게 활짝 피어난다.
모란은 스케일이 큰 꽃이다. 약간 이국적인 면때문에 이질감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봄꽃이 거의 막바지로 시들어갈 쯤 시원한 웃음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는 올 봄 나만의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누구나 불혹을 넘어서 인생의 가을로 접어드는 즈음,
아직도 아쉬운 그 무언가를 향해 몸짓과 손짓으로 갈구하며,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기다린다.
모란의 취기에 취해서 꺼져가는 봄을 부여잡고 있는데
그 모란마저 저버리고, 나의 곁을 떠난다면...
모란꽃과 함께 나의 봄도 이제는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러나 나는 아직 기다릴 테요.
나만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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