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시골살이 이야기

벗들과 함께 봄의 정원에서 노닐고...

방림재 2011. 5. 3. 11:56

주말에 잘 아는 일본인 아줌마가 손님과 함께 방문하셨다.

방림재 주변 꽃들이 때마침 가장 한창일 때 오셔서 그 기쁨이 배가 되었다.

 앵두꽃, 산수유, 목련이 한 자리에 모였다. 차츰 피어날 돌배꽃, 매화도 기대된다.

 

시간이 정체된 듯한 고즈넉함. 

 

역시 사람이 꽃과 함께 공간에 있을 때가 느낌이 더 좋다. 

 

엄청나게 쏟아져내리는 비 속에서, 손수 준비해 오신 散らしずし(찌라스즈시)와 내가 준비한 오뎅전골로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비가 올 때는 청주나 소주에 오뎅전골이 맞을 것 같아서 준비했는데 다들 반가워하셨다.

 

재료를 준비해 오시고, 나는 밥만 했다. 밥을 소금, 설탕, 식초로 간을 하면서 먼저 비빈다. 그리고, 각종 재료로 흩뿌리듯이 위에 담는다.

요즘 일본인들이 한국 음식을 많이 즐겨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비빔밥과 쌈밥의 맛을 이해 못한다고 들었다.

개개의 맛과 향을 음미하는데 중점을 두는 일본인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지만, 이 요리는 한국의 비빔밥처럼 약간 의외이긴 하다.

散らしずし는 일본의 여름 음식이라고 한다. 식초물에 비벼두어서 잘 시지 않고, 식은 후에도 먹을 수 있다고 한다.

빨갛게 물들인 생강을 깜박하고 준비 못 했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각종 재료(계란지단, 김, 새우, 연근, 죽순, 표고, 당근, 유부등)가 들어가서그런지 맛있었다.

 

비 구경하면서...

 

저녁 식사 후 하이쿠 짓기를 하고 있다.

 

나는 내키지는 않았지만, 함께 참여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걸 느꼈다.

 

5 7 5의 짧은 운율로 시를 짓는 하이쿠에는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가 꼭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기분이 참 좋다.라는 직설적 표현보다는 간접적으로 표현하는데 한 편의 그림이 그려지면서

긴 여운을 남기는 그런 시를 제일로 꼽는다.

하이쿠를 하면서 절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어떤 장소에 가도 늘 머리 속에 싯구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시를 짓기 위해 책도 가까이 할 것이며, 찰라의 느낌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섬세하고 잔잔하게 해야 하며,

또한 자신을 늘 체크해 주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40세 이상 거의 모든 사람이 하이쿠를 짓는다. 일본의 저력은 바로 이 하이쿠에서 나오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시를 지은 후 봉투 안에 넣는다. 모두가 하이쿠 짓기가 끝나면 모아서 정리한다. 

단순히 밥과 술로 수다만 떠는 것보다 만남의 의미있는 매개체가 있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돌아가면서 좋은 하이쿠에는 동그라미표를 한다. 

동그라미가 가장 많이 나온 것부터 차례로 대표가 읽어주면서 좀 더 나은 표현을 권하곤 한다. 

 

남편이 우리 조상들도 이런 풍류가 있었는데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단절되어버려 참 안타깝다고 했다.

곧바로 세 분 다 머리숙여 "すみません"이라고 했다.

남편이 하고 싶은 말을 적절하게 하는 용기도 좋았지만,

비록 개인이지만, 과거 일본인의 침략전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사과하는 것 또한 좋았다.

 

그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쩌면 더 풍류를 알았을 것이다. 시조를 짓고, 즉석에서 창을 하며 소리를 하였다.

좋은 시조가 나오기 위해서는 평소에도 늘 매진하고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일본의 침략과 해방 후에는 곧바로 한국전쟁이 나고,

그 이후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새마을 운동과 함께 모두가 도시로 산업 전선에 몸을 담게 되면서

우리의 좋은 문화는 소실되어 갔다.

 

그나마 곳곳에서 시조 시인들의 활동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위안삼고 있다.

시조가 길어서 일반인들이 접하기 힘들면, 시조의 종장인 3 5 4 3의 운율로 시를 짓는 것은 어떠냐고 일본인 아줌마가 제안을 했다.

그런 모임을 추진해 보라고...  

 

일본인 아줌마의 사랑하는 님이 생전에 지으신 하이쿠.

 

'무우말리는

마을에 이을(계승할) 아기를

등에 업고'

 

나도 이 하이쿠를 좋아한다.

아기업은 아주머니의 시름과 희미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않고 묵묵히 살아가는 농촌 마을의 한 장면이 연상된다.  

 

올 해 9년째를 맞는 벚꽃. 9년 전 봄에 사랑하는 님을 이 곳에서 수목장하였다.  

 

 생전에 알던 지인들과 함께, 술과 향으로 넋을 기리고 있다.

 

마을이 한 눈에 내리보이는 곳에서... 

 

올해는 꽤 많이 피었다.  

 

돌축대 앞 진달래가 하늘을 향해 미소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