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세상살이 낙서장

가장(家長)과 고양이 걸개그림

방림재 2013. 4. 10. 15:28

가장(家長)과 고양이 걸개그림

 

(아버지는 외출중...)

"엄마, 아버지 어디가셨어요?"

" 응, 서울가셨어."

"언제 오세요?"

"내일"

"그래요!....."

과연 그래요!하는 그 대답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한 번도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마 나와 같은 느낌이 아닐까 늘 생각했다.

 

시골에 10여년 살면서 제일 좋은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누군가 질문을 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부모가, 특히 아버지가 거의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

아이들 유년시절 추억 속에 아버지가 늘 등장해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이가 집에 있을 때 부모가 늘 함께 있다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이들 입장에서는 나쁜 것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내 개인적 입장에서 부모님을 떠올리면 늘 일만 하시고, 주변 사람들 문제 해결해 주러 다니느라 바쁘시고,

정작 우리와 함께 지낸 추억을 떠올리려고 해도 몇 가지 안 된다.

그래서 나는 귀농해서 아이들이 자랄 때 늘 함께 있어준 것이 가장 좋은 선물로 손꼽는다.

 

그러나, 그렇게 늘 함께 있으니, 간혹 가정에서 1인자의 위치에 있는 가장의 부재가 다른 가족 구성원들에게는

일상탈출의 묘한 희열이 있다.

이 또한 애들에게 물어보진 않았지만, 서로가 내색하지 않는 기운이 감도는 걸 느낄 수 있다.

첫째 그 집의 1인자가 누군지 알려면, TV니모콘을 누가 쥐고 있느냐로 결정하면 거의 맞아떨어진다.

아버지의 채널고정인 '뉴스'와 '인간극장', '세상에 이런 일이', '오지에서 살아남는다'류의 다큐멘타리에서 

벗어나는 길은 니모콘이 언제 돌아올지를 기다리는 어리석음을 빨리 포기하는 것이

옆에 있다가 인간극장보고 눈물 흘리는 40대 중반의 아버지 휴지를 갖다드리는 수고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니모콘은 잠시 실갱이가 있으나, 자연 장남에게로 승계된다.

아이들은 그동안 알게 모르게 조였던 가슴을 풀어내며, 자유로운 내 세상처럼 웃고 떨드곤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밥상머리에서부터 자세가  서서히 흐트러지고, 장난을 하거나,

어미의 말도 이제 장난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가장의 부재를 실감한다.

 

한 집안의 가장은 벽면에 걸린 고양이 걸개그림과 같다는 생각을 해 봤다.

쥐들이 살고 있는 곳에 고양이 그림을 걸어둔 곳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실험을 하면 재밌는 현상을 발견할 것 같았다.

고양이 그림이 걸린 곳의 쥐들은 고양이가 비록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아도, 늘 의식하면서 생활을 한다.

그래서 각 자의 맡은 일을 성실히 수행해 간다. 일상에서 약간의 스트레스나 저항이 있어야 힘이 생기듯 말이다.

반면, 고양이 그림이 없는 집단에서는 화평하고, 웃음꽃이 만발하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위계질서가 없고,

서로 나태해지고, 흐트러져서 나약해질 것이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숫사자는 시원한 나무 그늘에 앉아만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보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무리를 적으로부터 견제할 뿐만 아니라, 무리 사이의 위계질서를 공공연하게 부각지키고, 감시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병든 남편이라도 살아만 있어다오 하는 옛 어른들 말씀의 진정성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시대의 남자들, 특히 한국 남자들 정말 고생이 많은 것 같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에 큰 힘을 얻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너무 오만하면, 밥 못 얻어 먹는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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