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지 않은 농산물이지만 어쨌거나 우리가 뿌려서 우리가 거둔 것들은 모두 소중하다.
정말 씨뿌린데 싹이 난다는 말을 귀농하면서 꽤 시간이 지났는데도
작물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신비롭다.
진짜 싹이 올라오네. 때가 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구나.
작심하고 많은 수확을 바라고 농사에 전념하질 못하니깐
작은 수확이라도 뭔가 건진 것이 너무나 값지고 소중하다.
이렇게 게으른 농사꾼에게도 뭔가를 준다는 것이...
거름이 없는 메마른 땅에 콩과 팥을 심어도 된다고 그래서 뒷간 가는 길에 조그만 평수를 만들어 현빈이랑 둘이서 한 주먹 정도의 팥을 심었었는데, 이렇게들 다들 고개를 밀고 나와서 열매를 맺었다.
팥 수확을 했다.
많은 양이면 도리깨로 때리겠지만 얼마 안 되어 일일이 손으로 깠다. 올해는 꼭 동지날 팥죽을 해 먹어볼려고 한다. 아직 한 번도 안 해 봤다. 어릴 때는 새알도 빚고 했는데 그게 언제쩍 얘기인가 싶다. 그 옛날 세탁기도 없고 냉장고도 있을까 말까 하던 그 시절의 우리 어머니들은 그 바쁜 와중에 철따라 할 것은 다 했는데, 갈수록 우리들은 왜이리 철을 모르고 살까?
검은콩과 줄콩도 땄다.
줄콩이 더 있다면서 남편이 가서 더 따 갖고 왔다. 우리 집 농산물은 항시 뒷북치는 경향이 있는데 꼭 끝물에 가서 더 달리고는 하는데 호박도 그 중 하나다. 의외의 수확으로 반찬거리가 생긴 셈이다.
우와! 단호박이다. 귀농 8년차에 단호박 수확은 첨이다. 그것도 그냥 심어놓고 내팽겨쳐 두었는데 이렇게 달린 것이 있다니. 단호박은 유독 벌레가 많이 달려들어 몇 번을 심어봐도 열매가 달렸다하다가는 다 사그라졌는데 무관심하니깐 예상 외의 이런 횡재를 얻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 더 달려있는지 살펴봐야겠지만 단 한개라도 감사하다. 현빈이가 단호박 먹고싶다고 그랬는데 그래서 어느 마음씨 고운 여신이 듣고서 이렇게 열매를 맺게 해 준 것일까하는 착각이 들정도로 단호박은 그동안 넘지 못할 장벽이였다.
검은콩은 양은 얼마 안 되지만 밥에 넣어 먹어보니 단맛이 도는 것이 참 달짝지근해서 값어치를 더하고 있다.
줄콩은 거름이 많은 곳에다 심어서 그런지 세 줄기의 덩쿨에서 이렇게나 많이 나왔다. 그러니 시골에서는 좀만 부지런하면 땅을 통해 먹을 것이 다 나온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내년에는 좀 더 부지런을 떨어봐야겠다. 사람이 한 번에 부지런해지면 병이 날 것 같다. 조금씩 조금씩 내 몸을 이 곳 자연과 함께 맞추어나가면 나도 자연에 순응하면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법을 언젠가는 익힐 수 있겠지 하는 위안을 가져본다.
수확물을 보면서 이런 저런 상념에 빠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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