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시골살이 이야기

미국여행기 마지막

방림재 2007. 10. 3. 13:46

7월 31일 밤 8시 30분에 뉴욕 Korea town의 우리은행에 도착하였다. 저녁을 먹고나니 9시 30분쯤 되었다.

우린 늦은 저녁식사라서 소화도 시킬겸 걸어서  오드리 아줌마 집으로 가기로 했다.

뉴욕의 밤 거리는 활기넘쳐 보였다. 그리고 조금은 지저분하기도 하고 바쁜 사람들의 발걸음.

그 틈을 지나서  40분 정도 걸으니 41번가가 나왔다.

하루를 지났지만 며칠만에 만난 것처럼 포옹을 하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아줌마.

넉살좋은 현빈이는 보자마자 달려가서 안긴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하는 아줌마여서 밤에 미리 작별인사를 다 하기로 했다.

" I feel like you are my brother." 이라면서 남편을 먼저 안아주고 우리를 번갈아 가면서 안아주셨다.

예전에 유럽여행에서 사 오신 그림 한 점도 선물로 주셨다. 예쁜 글과 함께.

We see each other again soon. 이라는 말도 남겼다.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날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믿었다.

오드리 아줌마는 일찍 출근을 하시고 우린 천천히 기차 시간에 맞추어서 나가기로 했다.

다음 날 8월 1일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을 챙겨 먹고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를 하고 집 안 정리를 대충했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10시 30분 기차를 타기 위해  Penn Station으로 향했다.

오전 늦은 시간이라 너무 여유를 부렸는지 역에 도착하니 10시 10분정도 되었다.

표를 구입하기 위해 매표소에 가니 줄이 50m는 되었다. 어떻하지 하다가 자동매표소 기계 앞으로 갔는데 카드로만 할 수 있었다.

미국여행에서 느낀 것은 현금보다는 신용카드 한도액을 늘려서 가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여행자 수표도 바꾸기가 참 힘들고 $100이상만 되어도 일단 의심을 하면서 앞 뒤로 뒤집어 본다. 그리고 잘 거슬러주려고 하지 않는다. 이번 경우에도 카드가 안 되면 아마 기차를 타지 못했을 것이다.  버벅거리면서 겨우 표 4장을 구입하여 기차탈 준비를 마쳤다. 다행히 10분 연착이 되어서 여유롭게 탈 수 있었다.

저녁 7시 30분경에 New port News도착할 정도로 아주 긴 시간이였는데 이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 많은 얘기를 나누고 게임도 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8월 2일 하루를 쉬고 8월 7일 입국을 위해서 쇼핑도 하고 이틀을 보냈다.

긴 여행으로 지쳤는지 애들은 주로 집에서 TV를 보거나 자전거만 탔다.

8월 4일은 친구가 다니는 Jefferson Lab에서 일하시는 교포 한 분이 저녁 초대를 해주었다.

한국인 유학생과 방학 중에 잠깐 온 경북대 학생 그리고 연구소가 건립된 68년 초창기부터

연구원으로 일하고 계시는 물리학자 윤박사님도 만나게 되는 날이였다.

만나기 전 이날 우리는 Winery농장에 들르기로 했다.

1시간 30분정도 가면 가내수공업처럼 소규모로 하는 농장이 있다고 했다.

친구가 열심히 인터넷을 뒤진 것 같았다.

 농장건물

 

 

농장입구 

 

농장 전시장

 

포도가는 기계

 

포도즙 내리는 곳

 

오크통에서 발효숙성

 

증유해서 더 농축시킴

 

대형통에서 숙성기간을 거침

 

실험대. 발효억제제를 첨가하기도 하고 맛을 항상 균일하게 유지하게 하기 위해서 약간의 약품을 저울로 달아서 미세한 것까지

체크해나가는 주인장의 노하우가 담겨져있는 실험공간. 

 

시음을 직접하고서 기록을 해 두고 원하는 와인을 최종적으로 구매를 한다.

우린 white wine한 병을 구입해서 이날 저녁 초대받은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농장 주변에는 이렇게 숲에 방갈로도 있어서 피서객을 맞기도 했다. 농장 건물 뒷편에는 수영장도 있었다.

 

술 만드는 걸 좋아하는 남편을 위해 특별히 방문한 곳이다. 나중에 여러가지로 도움이 될 것 같다.

저녁 초대 시간은 5시 30분이였고 따라오지 않은 무열이는 론 아저씨 차를 타고 헤엘리 누나 집에 바로 오기로 했다.

모처럼 많은 한국인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요즘 물리학에 관심이 많은 남편은 윤박사님에게 여러가지로 질문도 하고 흥미있게 보냈다.

아침이슬이란 소주가 우리 돈으로 5000원에 판매됨에도 불구하고 주인 아저씨가 6병이나 사 두어서 소주가 고픈 한국 남자들에게 좋은 위안이 되었다.

헤엘리 어머니의 비빔밥은 정말 일품이였다. 모두들 맛있게 먹었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우리 한국인이 이런 훌륭한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 자랑스러웠다.

아쉽게도 여기서는 사진을 한장도 못 찍었다.

 

이 자리를 끝으로 우리의 미국여행을 거의 마치게 되었다.

일상에서와 완전히 단절되어서 나를 다시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내 나이 마흔이 되기까지 이렇게 멀리 집을 떠나 이렇게 긴 시간동안 지내 본 적이 첨이다.  

때론 지루하기도 하고 때론 왜 왔지하는 생각도 간간히 들기도 했지만

그러다가 이렇게 거대한 강대국의 국부를 느끼면서 세상이 그렇게 만만하지만은 않구나라는 실체를 20대에 미리 느꼈더라면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좀 더 정확하고 풍부하였을 것을.하는 아쉬움은 두고두고 큰 공부가 될 것 같다. 지금이라도 느끼고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우리 가족 모두 각기 그 느끼는 바가 다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중한 경험을 하였다는 것에는 한마음이다. 친구 혜경이에게 고맙고 그리고 오드리 아줌마에게도 정말 감사드린다. 아줌마가 내게 해준 말을 다시 가슴에 새기면서 여행기를 마칠까 한다.

"It depends on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