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 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 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김수영-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김수영의 이 시는 5, 60년대의 암울했던 우리의 현실 속에서 정면으로
사회의 부조리에는 감히 저항하지 못하면서
어느 날 고궁에 갔다가 나오면서 우리의 역사와 암울한 현실을 마주 보고
속물 중의 속물인 자신의 소시민적인 본성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비판하는 작품이다.
내가 아는 한 사람이 김수영 시를 즐겨하는 편이라 나도 한 번 관심을 가져봤다.
작가 최인호씨가 '꽃밭'이라는 아름다운 수필집을 펴냈는데 그 속에 이 시가 소개되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나라의 부조리에 대한 거창한 분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정말 거기까지는 안 가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작은 일에 분개하지 않는가.
'나는 이제 조그만 일에 분개하는 사람이기보다 조그만 일에도 나 스스로 친절하고 겸손하고 더욱더 작아져 모래처럼 적은 사람이 되고 싶다. 바람과 먼지와 풀처럼 정말 얼만큼 적은 사람이 되고 싶다.' 라고 최인호 작가는 끝을 맺었는데 참 공감하는 말이다.
나도 이제 그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