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세상살이 낙서장

아이들 졸업식을 맞으며...

방림재 2013. 2. 8. 10:57

 

 

어제 7일 졸업식을 하기 전 날 평창에 또 함박눈이 내렸다.

이제는 눈을 미워하는 마음도 없어졌다.

지겨울 정도로 내리는 눈을 치울 때마다 환경파괴로 인한 인류의 기후변화의 심각성에, 다음 세대들을 떠올린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하여 중년의 부부가 눈을 치우고,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남편은 연탄재를 하나 들고 오더니, 둘둘 말아서 눈덩이 두 개를 만들더니, 호미를 갖고 와 조각상을 만든다. 

 

 

내가 만든 눈사람. 아들이 보더니, "평창에서 목축업하세요?" --- "아니요, 졸축업해요." 라며 중얼거린다.

 

다음날, 아들은 고등학교에서 졸업식하고, 딸은 초등학교에서 같은 시간에 졸업식을 가졌다.

초등학교는 오래 걸린다고 하여, 일단 아들 졸업식에 왔다. 평창고등학교 62회 졸업식이다. 

 

딸 친구 엄마에게 문자를 하니, 곧 상장수여식이 있다하여, 다시 초등학교로 급하게 운전해 왔다.

10분 뒤 현빈이가 상을 받는 걸 찍을 수 있었다.  

이쯤 되면 아빠는 도대체 어딜 갔을까?

남자가 졸업식에 가는 사람이 몇 되겠느냐면서 점심 때 만나기로 했는데 살짝 끌고 올 걸 후회했다. ㅋ

 

다시 평창고등학교로 오니, 졸업식이 끝나고 귀가하고 있었다.

담임선생님을 찾아서 감사 인사를 드리고, 무열이 정든 교정 앞에 세워 급하게 사진 한장 찍었다. 

바쁘게 쫒아다니다 보니, 꽃다발도 준비 못했다. 역시 앞이 허전하다.

"아들, 졸업 축하한다. 짧지만, 긴 시간을 잘 견뎌냈다."

 

고 1때 실용음악을 전공한다고 원주로, 고 3때는 서울로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으러 다녔다.

고 3때는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는지 흰머리까지 생기고, 지난 가을에는 피아노를 너무 쳐서 손톱 끝이 다 부러지고,

손가락마다 물집이 잡혀 반창고를 붙이며, 쉬라고 해도 계속 연습했다.

팔목, 어깨에 파스를 붙이고 다녀 고 3부모의 심정이 왜 그렇게 힘든 것인지 실감하게 되었다.

1월 달에 실기원서 낼 때 자기가 원서낸 학교에만 들어갈려고 하고, 여기 다 떨어지면 재수한다고 하여,

한 때 서로 실랑이를 벌여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다행히 단국대 실용음악과 재즈피아노 전공에 합격하였다.

오디션 프로와 한국 음악이 전 세계로 뻗어가면서 실용음악과의 경쟁률은 계속 치솟아 올라가고 있고, 단국대도

200여명 지원에 6명 뽑아서 되겠나 싶었는데... 로또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여러가지로, 여러모로,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모든 1%가 하나하나 모여서 오늘날의 결과가 오지 않았을까 싶다.

아들이 3개월 사이 6Kg이 빠졌다.

뭐든 새로운 것을 얻는 데는 반드시 감해지는 것이 있어 균형을 이룬다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섣불리 무언가를 얻으려 하지말라는 것이 삶의 경고 메세지일 수도 있다.>

"고맙다. 아들, 잘해줘서. 시골에서 자란 생태적 감성들이 너의 음악 세계에 잘 발현되길 바란다."

 

다시 평창초등학교에 오니, 축하공연으로 후배들의 난타공연 중이였다.

 

 

6학년 친구들과 담임선생님. 

 

담임선생님과 친구처럼 잘 지내서 더욱 아쉬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초등학교 1학년 때 입학해서 한 달이 지나고는 계속 학교 가기 싫다고 해 결석도 많이 하고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울면서 하는 말이 "엄마, 나 행복하게 살고 싶어."였다.

"다들 행복하지 않아, 애들도 선생님 말 안 듣고, 왜 안 듣는지 모르겠고, 선생님도 화내고, 난 이런 게 너무 싫어..."

그때 마음이 참 아팠다. 산골소녀로만 지냈던 현빈이가 규정이 있는 사회로 첫 발을 내딛었는데 적응하기 참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들이 이간질을 하는 것도 못견뎌 했었다.

졸업식 끝나고, 어제 밤에 누워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데 자기는 1, 2학년 때 선생님이 애들 혼내고, 때리고 이럴 때

그저 눈물부터 났다고, 그런데 내가 살아야기에 나도 강해지고, 독해(?)졌다고 한다.

그 말이 또 마음이 아프다. 간혹 현빈이는 학교 교육을 시키는 것이 잘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있다.

타고난 본성이 가려지고, 트라우마로 새로운 껍질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내 나이 마흔이 넘어서 결국 그 껍질을 깨고 나의 본성을 찾으려고 이렇게 갈구하는데...

"현빈아, 그래도 고맙다. 그리고 졸업 축하한다."

 

아무튼 졸업을 하는데 내가 졸업한 것보다 더 기쁜 것 같다.

하나씩 하나씩 임무를 수행해 나가고 마디가 늘어나는 것이 좋다.

어서어서 크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