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세상살이 낙서장

풀 뽑지 마라

방림재 2009. 7. 12. 11:04

요즘은 풀뽑을 시간이 잘 없다.

주말에 마음잡고 풀 좀 뽑을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나가서 서너 포기 뽑기 시작하면

빗방울이 얼굴을 치곤 한다.

 

가끔 우산을 쓰고 뽑기도 한다.

난 풀 뽑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부드럽게 잘 뽑힐 때가 젤 좋다.

 

풀을 뽑고 있으면 아무 잡념도 없다. 간간히 떠오르는 생각이 있긴 하지만,

그럴 때에는 지금 뽑고 있는 그 풀 속으로 그 마음을 넣고 함께 뽑혀 나간다.

그런데 간혹 뿌리를 잘 박고 내린 바랭이같은 풀들은 나의 일정한 기운들을 흩트리게 한다.

그 억센 것을 억지로 뽑으려고 도구도 없이 두 팔의 힘에만 의지해서 뽑거나 아니면, 툭 끊어지면서

엉덩방아를 찧게 되면 그간의 차분하던 기운들이 흩트러지고 오로지 사생결단의 자세로 일에 열심이게 되면

1시간도 못 되어 지쳐간다.  

 

사람이 거칠어진다는 것, 열심히 산다는 것.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요즘 '열심'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과연 우리 사회가 열심히 열심히 목표를 갖고 앞만 보고 살아와서 과연 오늘날 우리가 행복하고 있을까? 하는... 우리 사회의 성공의 기준은 산업의 고도 성장과 함께 열심히 해서 부를 축척해 가는 것에서 지금도 별반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열심히의 그 이면에는 어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것에 양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며칠 전 평창소식지에서 대관령 양떼 목장 주인분들의 소개글이 나온 것을 읽었다.

20여 년간 피땀 흘려 엄청 열심히 그 터전을 가꾸었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찾아오는 관광지가 된 귀농 성공사례를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지금 부인이 많이 아프다고 써져 있었다. 참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고생고생해서 이제 살만하다고 하는데 그렇게 되어서... 빨리 회복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쓴 사람의 촛점은 고생했지만, 이제는 소득을 많이 창출하게 되었고,

성공적인 귀농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자제분들이 어느 어느 대학교를 다닌다면서 글을 마쳤다.

마음이 아프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과정과 결과에서 빚어지게 되는 여러가지 상황은 덮어두고,

열심히 살아서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에만 관심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

 

나는 그 부인이 얼마나 힘들었고, 이렇게 자리를 잡게 되기까지 또 얼마나 벗어나고 싶었을까하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자신의 힘에 부치는 것을 억지로 하게 되면

반드시 그 뒷면의 어둠은 깊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남편은 나더러 늘 하는 말이 "풀 뽑지 마라"다. 난 아직 이 말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아니 말 뜻은 받아들이나 몸이 아직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야 정확할까?

하지만 그 말의 의미의 깊이는 느낀다.

왜 풀을 뽑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그러나 난 풀을 뽑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주내에서 하려고 한다.

뭐든지 내 몸에 맞게 움직여야 된다는 것을 깨달아간다.

애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나, 손님들이 왔을 때 불편한 곳, 작물이나, 나무, 꽃을 심은 곳.

그리고 하루에 2시간이상 하지 않는다. 뽑히려고 하지 않는 억센 풀은 그냥 낫으로 하려고 한다.

그 억셈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나도 억세어지는 것이 염려되기 때문이다.

더 염려되는 것은 그것이 내 아이들, 내 남편에게까지 전달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 자신에게. 

 

비가 그치는 저녁 시간에 해도 없고 해서 풀뽑기에 좋긴 하지만, '깔따구'라고 불리는, 풀 숲에만 가면 만나는 모기들이 땀과 한 포기라도 더 뽑을려는 나의 열기를 찾아 쉼없이 달려든다. 그래서 모기향까지 생각해 냈다. 역시 효과 만점이다. 깔따구들이 반경 2m까지 침범하지 못했다. 뽑다보니 모기향이 저쪽에 있고 다시 모기들이 달려들어서 알게 되었다. 

 

사랑채앞 풀들이다. 잦은 비로 풀들이 쑥쑥 크고 있다. 

 

비온 뒤의 잠시간의 모습. 저 밭에도 정리를 좀 해야 될 터인데 숙제가 계속 밀리고 있다. 

 

 구름 속에 마을이 가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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