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세상살이 낙서장

방림재 2008. 2. 28. 22:08

사람의 품격은 높낮이가 있습니다.

부부는 평등합니다.

부부는 모든 것에서 평등합니다.

 

원수끼리 등지고 삽니다.

친구끼리 마주보고 삽니다.

부부 사이는 나란히 서서 삽니다.

 

1

설렁설렁 걷다 보니 어느새-

매표소까지 내려 왔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던 승용차가

차를 돌려 화장실 앞에 섰습니다.

차안의 남녀가 실랑이를 합니다.

오대산 구경을 하자, 말자입니다.

 

입장료가 비싸, 얄미워-

그렇다고 예까지 와서 그냥 가?

그냥 가자-

남자의 끝말에 여자는 침묵합니다.

그들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쓸쓸한 여자의 얼굴이 오래 남습니다.

 

조금 주고 많이 얻으면 이익입니다.

 

2

한 사람 입장료 2500원-

소형차 입장료 4000원-

입장료가 비싼 듯 합니다.

그런나-

오대산은 2500원어치는 됩니다.

단풍이 물든 지금- 입장료 값은 되지요.

 

그 남자는 경직된 정의감에 젖어

<응> 한마디를 못했습니다.

주머니에 9000원은 남겼지만-

오대산을 잃었습니다.

오대산의 단풍을 잃었습니다.

그 여자의 단풍같은 마음을 잃었습니다.

 

오대산의 화장실이 참 깨끗합니다.

 

3

사람들 삶이란 하루 종일-

문을 열고 닫는 것입니다.

문이 제대로 열리면 시원합니다.

문이 고장이라도 나서

제대로 여닫기지 않을 때-

불편합니다.

 

문을 열 때-

열릴 문이라 예측합니다.

문을 유쾌히 열었을 때-

문이 열리지 않으면 손이 아픕니다.

자주 손이 아프면 문 열기가 겁납니다.

나중엔- 포기합니다.

 

마음의 문은 열쇠로 열리지 않습니다.

 

4

부부가 얘기를 나눕니다.

<점심에 칼국수 먹자.>

<밀가루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냐.>

문을 열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손이- 가슴이 저립니다.

 

<싫어.>

<못해.>

<아니야.>

<너나 해.>

문이 열리지 않는 소리입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무너진 가슴은 보험처리도 못합니다.

 

5

요즘,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다고 푸념들입니다.

그러나-  말은 많습니다.

주고받는 말이 없을 뿐입니다.

일방적으로 퍼붓는 말만 있습니다.

퍼붓는 말은 돌이 되어 성벽이 됩니다.

 

부부 사이에-

많은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딱- 한 마디,

<응>입니다.

이 말 뒤엔 나누는 말이 절로 솟습니다.

나누는 말은 깃털이 되어 부부를 감쌉니다.

 

자동문은 앞에만 서도 자동으로 열립니다.

 

6

하얀 부부가 산책을 하며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 집 팔아서 세계 여행 떠나자>

<응>

<신난다.>

두 사람은 깃털이 되었습니다.

실바람 타고 그들은 벌써 여행 중입니다.

 

까만 부부가 밥 먹으며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 집 팔아서 세계여행 가자.>

<뭐라구?><집 팔아서......?>

<이게 미쳤나. 배때기가 부르니?>

밥상이 밖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들보다 밥상이 먼저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름다운 농담은 삶의 날개입니다.

 

7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응>으로 시작해-

<응>으로 끝나려면-

화가 나 있지 않아야 합니다.

온전한 성품이어야 합니다.

느낌이 섬세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의 대화가

<응>으로 시작해-

<응>으로 끝나려면-

서로 앙금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해야 가능합니다.

 

<응>이란 약은 만병을 치료합니다.

 

8

아무 계산도 없이

따져 보지도 않고

네가 하자고 하니-

네가 가자고 하니-

<응>하는 사이가

진정한 벗, 진정한 부부사이입니다.

 

혹시, <응>한다 해도

따지고, 두려워하고, 얕보아서

<응>하는 사이라면-

벗도, 부부 사이도 아닙니다.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외교관들입니다.

 

세련됨과 푸근함은 빛깔이 다릅니다.

 

9

<응>이란 말은 요술쟁이입니다.

부부 중에 누가 <응>이라 말하는 순간,

<응>은 퍼센트(%)로 변화합니다.

부부는 둘이 만든 세상에서

50% : 50%의 동등한 대주주가 됩니다.

공존과 경영의 대등한 동반자입니다.

 

<응>이라 말하는 순간_

<응>은 나누기(÷)가 됩니다.

부부가 만든 세상 안에서 생기는

기쁨과 슬픔을 50 : 50 으로 나눕니다.

<응>- 대등한 존재끼리의 암호입니다.

<응>-균형미의 극치입니다.

 

전쟁터에서 암호를 모르면 죽습니다.

 

10

탁구 시합은 서브로부터 시작합니다.

서브를 <서비스>라고도 합니다.

선수들이 먼저 서비스하기를 거부하면

탁구시합은 영원히 정지 상태가 됩니다.

관중은 황당해 합니다.

끝내- 입장료 환불소동이 납니다.

 

부부 생활에서 <응>이 서브입니다.

<응>이 그에게 주는 서비스입니다.

서브를 거절하면 선수 자격 박탈입니다.

<응>을 거부하면 부부 자격 탈락입니다.

이혼법정에서 서로 소동 피우는 모습-

입장료 환불소동과 같은 소동입니다.

 

글-박해조

 

'응'이란 단어와 '÷' 의 구조가 같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렇다. '응'은 똑같이 나눈 나누기 모양이다.

 

나는 위 글 6장에서 <우리 집 팔아서 세계 여행 떠나자>라는 대목이 차암 마음에 든다.

지금 당장 그런 말을 들으면 <응>이라고 말은 신나게 할 수는 있어도 당장 실천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치만 이담에 아이들이 다 홀로서기를 하게 되면, 그 때 가서 뭐 팔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뭐 그러지, 뭐. 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이들면 아무 곳도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그러는데,

아무 것도 맛난 것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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