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품격은 높낮이가 있습니다.
부부는 평등합니다.
부부는 모든 것에서 평등합니다.
원수끼리 등지고 삽니다.
친구끼리 마주보고 삽니다.
부부 사이는 나란히 서서 삽니다.
1
설렁설렁 걷다 보니 어느새-
매표소까지 내려 왔습니다.
매표소에서 표를 사려던 승용차가
차를 돌려 화장실 앞에 섰습니다.
차안의 남녀가 실랑이를 합니다.
오대산 구경을 하자, 말자입니다.
입장료가 비싸, 얄미워-
그렇다고 예까지 와서 그냥 가?
그냥 가자-
남자의 끝말에 여자는 침묵합니다.
그들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쓸쓸한 여자의 얼굴이 오래 남습니다.
조금 주고 많이 얻으면 이익입니다.
2
한 사람 입장료 2500원-
소형차 입장료 4000원-
입장료가 비싼 듯 합니다.
그런나-
오대산은 2500원어치는 됩니다.
단풍이 물든 지금- 입장료 값은 되지요.
그 남자는 경직된 정의감에 젖어
<응> 한마디를 못했습니다.
주머니에 9000원은 남겼지만-
오대산을 잃었습니다.
오대산의 단풍을 잃었습니다.
그 여자의 단풍같은 마음을 잃었습니다.
오대산의 화장실이 참 깨끗합니다.
3
사람들 삶이란 하루 종일-
문을 열고 닫는 것입니다.
문이 제대로 열리면 시원합니다.
문이 고장이라도 나서
제대로 여닫기지 않을 때-
불편합니다.
문을 열 때-
열릴 문이라 예측합니다.
문을 유쾌히 열었을 때-
문이 열리지 않으면 손이 아픕니다.
자주 손이 아프면 문 열기가 겁납니다.
나중엔- 포기합니다.
마음의 문은 열쇠로 열리지 않습니다.
4
부부가 얘기를 나눕니다.
<점심에 칼국수 먹자.>
<밀가루 못 먹고 죽은 귀신이 붙었냐.>
문을 열어 보았지만-
열리지 않았습니다.
손이- 가슴이 저립니다.
<싫어.>
<못해.>
<아니야.>
<너나 해.>
문이 열리지 않는 소리입니다.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입니다.
무너진 가슴은 보험처리도 못합니다.
5
요즘, 부부 사이에-
대화가 없다고 푸념들입니다.
그러나- 말은 많습니다.
주고받는 말이 없을 뿐입니다.
일방적으로 퍼붓는 말만 있습니다.
퍼붓는 말은 돌이 되어 성벽이 됩니다.
부부 사이에-
많은 말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딱- 한 마디,
<응>입니다.
이 말 뒤엔 나누는 말이 절로 솟습니다.
나누는 말은 깃털이 되어 부부를 감쌉니다.
자동문은 앞에만 서도 자동으로 열립니다.
6
하얀 부부가 산책을 하며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 집 팔아서 세계 여행 떠나자>
<응>
<신난다.>
두 사람은 깃털이 되었습니다.
실바람 타고 그들은 벌써 여행 중입니다.
까만 부부가 밥 먹으며 얘기를 나눕니다.
<우리 집 팔아서 세계여행 가자.>
<뭐라구?><집 팔아서......?>
<이게 미쳤나. 배때기가 부르니?>
밥상이 밖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그들보다 밥상이 먼저 여행을 떠났습니다.
아름다운 농담은 삶의 날개입니다.
7
사람 사이의 대화가
<응>으로 시작해-
<응>으로 끝나려면-
화가 나 있지 않아야 합니다.
온전한 성품이어야 합니다.
느낌이 섬세해야 합니다.
부부 사이의 대화가
<응>으로 시작해-
<응>으로 끝나려면-
서로 앙금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서로 존중해야 가능합니다.
<응>이란 약은 만병을 치료합니다.
8
아무 계산도 없이
따져 보지도 않고
네가 하자고 하니-
네가 가자고 하니-
<응>하는 사이가
진정한 벗, 진정한 부부사이입니다.
혹시, <응>한다 해도
따지고, 두려워하고, 얕보아서
<응>하는 사이라면-
벗도, 부부 사이도 아닙니다.
그들은-
협상 테이블에 앉은 외교관들입니다.
세련됨과 푸근함은 빛깔이 다릅니다.
9
<응>이란 말은 요술쟁이입니다.
부부 중에 누가 <응>이라 말하는 순간,
<응>은 퍼센트(%)로 변화합니다.
부부는 둘이 만든 세상에서
50% : 50%의 동등한 대주주가 됩니다.
공존과 경영의 대등한 동반자입니다.
<응>이라 말하는 순간_
<응>은 나누기(÷)가 됩니다.
부부가 만든 세상 안에서 생기는
기쁨과 슬픔을 50 : 50 으로 나눕니다.
<응>- 대등한 존재끼리의 암호입니다.
<응>-균형미의 극치입니다.
전쟁터에서 암호를 모르면 죽습니다.
10
탁구 시합은 서브로부터 시작합니다.
서브를 <서비스>라고도 합니다.
선수들이 먼저 서비스하기를 거부하면
탁구시합은 영원히 정지 상태가 됩니다.
관중은 황당해 합니다.
끝내- 입장료 환불소동이 납니다.
부부 생활에서 <응>이 서브입니다.
<응>이 그에게 주는 서비스입니다.
서브를 거절하면 선수 자격 박탈입니다.
<응>을 거부하면 부부 자격 탈락입니다.
이혼법정에서 서로 소동 피우는 모습-
입장료 환불소동과 같은 소동입니다.
글-박해조
'응'이란 단어와 '÷' 의 구조가 같다는 것을 어찌 알았을까?
그렇다. '응'은 똑같이 나눈 나누기 모양이다.
나는 위 글 6장에서 <우리 집 팔아서 세계 여행 떠나자>라는 대목이 차암 마음에 든다.
지금 당장 그런 말을 들으면 <응>이라고 말은 신나게 할 수는 있어도 당장 실천할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한다. 그치만 이담에 아이들이 다 홀로서기를 하게 되면, 그 때 가서 뭐 팔 것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래 뭐 그러지, 뭐. 하고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이들면 아무 곳도 가고 싶은 곳이 없다고 그러는데,
아무 것도 맛난 것 먹고 싶은 것도 없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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