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시골살이 이야기

난로 재정비

방림재 2012. 1. 5. 21:30

몇 해 동안 잘 쓰던 난로가 작년부터 말썽이였다.

작년에는 갑자기 너무 추워졌을 때 지붕 위 연통 밑부분에 목초액이 흘러나가다가 얼어

연통을 막아 난로가 잘 피질 않아 애먹었다.

포기하고 석유난로를 필요할 때 쓰면서 역시 석유의 보급은 너무 달콤하다고 여겼다.

 

올 겨울 들면서 난로를 재시도해 보았는데 의외로 잘 피었다.

목초액이 연통 안에 적절히 끼여있어서 그런지 한꺼번에 타지 않고, 나무가 서서히 타들어가면서

아주 효율적이며 지속적으로 집 안을 훈훈하게 해 주었다.

실내 온도가 20도가 되면서 남편이 할 일을 다 한양 의기양양하게 행복해했었다.

시골에서 실내 온도가 20도 된다면 생활하기에 아주 적절한 온도이다.  

겨울에는 역시 등 따스고 배부른 것이 제일이다.

따뜻한 아랫목에만 손을 넣어도 그보다 더 행복한 것이 또 있을까 싶다.

 

 

그렇게 행복한 우리 집에 또 한 번의 찬물이 끼얹어졌다.

문제는 목초액 냄새다.

목초액 냄새가 나도 뭐, 따뜻하면 된다면서 무시했는데 아들이 학원을 갔다왔는데

선생님이 너 담배피우냐고 묻더라는 것이다. 목초액 냄새일 거라고는 했는데 코를 막더니 창문을 열면서

자주 나갔다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학교에서도 애들이 옷에서 냄새난다고 담배피우냐고 했다는 것이다.

냄새보다는 추위가 먼저인 40대 중반의 시골부부는 "아니라고 하면 되잖아"라고 무마시킬려고 했는데

"그러다가 선생님이 오해해서 벌점받으면 몰라요."하는 것이다.

 

거기까지에서 남편도 말을 잇지 못하고, 그 길로 한 2주간 난로를 피우지 않고, 다시 석유난로를 꺼냈다.

거실이 워낙 넓어서 추울 때는 난로를 피워야 된다.

난로가 없던 귀농 초창기에는 또 없이도 살았지만, 인간은 새로운 것이 생기면 또 거기에 너무도 잘 적응해 간다.

 

그 날 밤 남편은 소주 댓병을 들고 식탁에 앉으며

"인생이 너무 서글프다." 며 소주 잔을 기울였다. ㅋㅋ

딴에는 시골에서 나무해 뜨뜻하게 해 아들 교육시키고 재미나게 살아볼려고 그러는데

도시에 나갔다 온 아들의 한 마디가 그동안의 행복을 깨버렸다.

"세상이 날 배신하는 것 같아." 한 잔 마시고 이어서 나온 말.

 

그렇게 난로만 쳐다보길 이주일이 지난 뒤 어제 은박테이프와 석고붕대를 사왔다.

그동안 연통을 타고 흘러내린 지저분한 목초액을 철수세미로 문지르고 닦아내고  

은박테이프와 석고붕대를 차례로 감아주었다.

 

내가 참 말을 안 해서 그렇지 깔끔하게 일처리하는 걸 좋아하는 나는

그 난로 쳐다볼 때마다 흘러내려온 목초액이 눈에 가시였었다.

그래도 내가 못하는 것을 남에게 요구하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많이 포기하고 살았는데...

 

 

일이 거의 끝나가는 이 시점에서 한마디 했다.

"왜 진작 그렇게 안했어?"

잠시 후 "몰랐지, 뭐. 꼭 그렇게까지 해야 되나 싶었지."

 

그래, 수고했어요.

이 겨울에 뭐 하나 수리하거나 몸 꿈쩍거리는데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에

무조건 칭찬해줘야 된다. 아님, 또 삐져서 소주 댓병 찾는다.

 

이제 다 되었다. 참 깨끗해졌네.

오늘 저녁부터 난로를 다시 피웠다.

아직까지는 냄새가 나지 않고 있다.

훈훈한 겨울나기는 참 노고가 많이 따라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