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겨울방학
아이들이 방학을 하면, 자연 시골에서는 어른들도 함께 방학이 된다.
모든 시간이 애들에게 맞추어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애들에게는 휴식의 시간이지만, 어른들은 늦잠을 잘 특혜만 있을 뿐, 온전한 방학을 누리지 못한다.
근 두 달동안 내가 하루 세 번의 식사 준비와 하루 세 번의 설거지를 하면서 느낀 것은
역시 학교는 주부를 위한 해방터라는 생각을 절실히 하게 되었다.
60일X3=180번의 식사와180번의 설거지를 했다는 것이다.
물론 주말에 애들이 두 끼씩 설거지 하는 것을 빼면 32번 정도는 빠지겠고, 한 2-3일 밖에 나갔다 온 것을 빼면
적어도 식사는 160번과 설거지는 130번 정도는 했다는 것이다.
먹고 돌아서면 곧 식사 준비를 해야 한다. 거기다가 빨래며, 청소등이 사이에 들어가는 날에는 거의 하루 종일 가사 노동에 시간을 보내야만 한다.
방학이 아닌 때도 같은 일상을 하긴 하지만, 애들이 학교를 간 뒤의 오전 시간을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아침에 학교 간 애들이 보고 싶을 정도로 완전한 휴식를 취할 수 있었다.
컴퓨터 자판을 만질 기회가 거의 없을 정도로 컴퓨터는 애들이 학습이며, 놀이로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온 집 안이 왜 이리 어지러운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잔소리의 대상이 되었다.
이제나 저제나 개학을 기다려 드뎌 이번 주를 맞이하였는데 아니, 개학하자마자 또 봄방학을 하니...
개학을 하니 늦잠 자는 특혜는 사라졌지만, 애들이 등교할 때 모처럼 함께 걸어나가 한바퀴 산책을 하고 들어오니
겨우내 움츠린 몸과 마음이 활기를 찾는 것 같아 너무 좋았는데...
어른들이 애들을 잡아주는 것이 아니라, 애들 시간에 맞추어 어른이 움직여진다.
그래도 모처럼만에 아침 시간을 활용하면서 마을 길을 걸으니 참 좋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꿈꿔온 '엄마'라는 것이 있다.
장사를 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탓에 나는 나중에 어른이 되면 애들은 반드시 내가 키울 것이며,
꼭 삼시 세끼 밥은 정확한 시간에 먹을 수 있게끔 하는 것이였다.
누가 보면 참 별 것도 아닌 꿈이겠지만, 학교 갔다 왔을 때 텅빈 집과 초등학교 때부터 점심을 내가 차려 동생을
먹여야 되거나 그냥 거른다거나 하는 그런 시절이 나의 기억 속에는 늘 회색과 갈색이였다.
사람들의 바램은 당장에 이루어지는 않는다고 해서 꿈꾼대로 안된다고 쉽게 믿을 수 있는데
바램은 그 뜻이 식지만 않는다면 언제가 20년, 30년이 지나고 나서 어느 덧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집 안에 돈이 있어도 나는 세 끼를 초등학교 때까지 정확한 시간에 별로 먹어 보질 못했다.
그러던 것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오시면서 엄마의 부재에 대한
나의 결핍이 채워지게 되었다. 물론 어머니는 그 시절 생존 경쟁에만 몰두하고 산 것을 두고두고 미안해 하셨다.
그러나 고생하신 것을 자식들이 다 보고 컸으니깐 우리 형제 누구도 그것을 두고 원망해 본 적은 없었다.
대신 우리는 빨리 성숙하고 어른이 되어갔던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 없는 자성력이 빨리 생겼다고나 할까.
나는 어릴 때부터 건강한 친구들이 참 부러웠다.
그래서 내 아이들은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어릴 때 건강하게 잘 자란 친구들이 결국 평생건강이 된다는 것을 주변에서 난 많이 보았다.
그런 염원이 너무 내 세포 속에 심어져 있는 것인지,
나는 방학 때도 점심을 12시에 먹기 위해 아침을 적어도 8시 30분-방학이라 조금의 늦잠을 허용해준 시간이다-에는 먹어야 했다.
12시에 점심을 먹는 것은 저녁을 6시에 먹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간식을 먹는다 해도 저녁 9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이번 방학에는 첨으로 식사 준비가 좀 벅찼다. 나이 탓인가? ㅋㅋㅋ
남편은 힘드니깐 라면이나 끓여 먹자고 자주 얘기 했다. 라면 준비라면 내가 준비할께 라면서 굉장히 선심을 쓰는 듯했다.
그런데 내가 아주 급박한 상황이 아니면 라면을 먹지 않는다.
그나마 감자라면이나 쌀라면이면 조금 허용하는 편이긴 하지만, 일년에 한 10번 정도 될까말까한다.
나는 라면을 먹고 나면 기분이 나빠진다. 웃기는 얘기지만, 나의 의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먼저 든다.
애들에게 건강한 식사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생각.
시골에 오기 전에도 라면을 별로 먹지를 않았지만, 시골로 이사와서 한 3년 정도 우유, 라면, 수입밀가루음식을 완전히 끊은 적이 있다.
그 이후로 현빈이의 약간의 부분 아토피와 무열이의 계절만 바뀌면 나타나는 피부 트라벌이 없어졌다.
우리가 끊은 것 중 가장 안 좋은 것이 라면이였다. 왜냐하면 라면을 끊은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지나다가 라면 냄새가 나면
아직도 '맛있겠다'면서 라면냄새를 기억하는 것이다. 그만큼 수프의 중독성이 강하다는 것이다.
한 끼 한 끼 건강한 밥상을 차려 먹는 것에는 상당히 뿌듯한 안도감으로 만족하고는 있지만,
뭐든 너무 부여잡으면 부아가 걸리는 것인지 겨울방학이 넘 길다는 생각이 든다.
봄을 기다리는 엄마는 새학기도 함께 기다리는 주부이다.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