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나들이
개학을 앞둔 현빈이가 이번 방학은 너무 재미도 없고, 또 체험학습 숙제를 해야 되는데 어딜 간 곳도 없고
너무 시시한 방학이라고 잠자기 전 아빠한테 애절한 모드로 하소연을 한 모양이다.
우리 가족은 여름에는 어지간해서 도시로 나가질 않는데 특히나 남편은 더더욱 복잡하고 덥고 차 막히는 곳으로 이동은 말도 않고 고개부터 가로 젓는다.
그런데 웬일? 딸내미가 아빠의 마음을 애끓게 흔들어 놓았나 보다.
현빈이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주말에 '리움미술관'에 가게 되었다.
휴가때 오신 손님 중에 서울 가까이서 가볼만한 미술관이라고 소개도 했는 터라, 또 체험학습 숙제하기에도 적당하다고 여겨지기도 해서, 주 목적지를 미술관으로 정하게 되었다.
휴가를 피해서 8월 15일에 서울로 상경하니 휴가철이 지났는데도 휴일을 맞아 내려오는 차들이 줄을 이었다. 반대로 우리 차선은 정말 한산해서 좋았다.
잠시 이천휴게소에서 쉼. 요즘은 휴게소도 참 예쁘게 꾸며놓는다. 분수도 있고, 잉어도 있다.
모처럼의 나들이에 현빈이는 달짝지근한 맛과 함께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곳곳에 걸려있는 새 집 속에 새도 구경하면서...
무열이가 잠자리 혼빼는 놀이를 하고 있다. 잠자리 잠는 법으로 아주 간단한 방법인데 앉아 있는 잠자리 앞에 가만히 가서 손가락으로 한참 뱅뱅 돌린 후에 가서 잡는다. 그러면 잠시동안 멍한지, 다가가도 날아가지 못한다. 나도 아들에게 배워서 한 두번 해 본 적이 있다.
아침 9시경에 출발해서 점심경에 리움미술관에 도착했다. 아침에 준비해간 샌드위치랑 과일을 들고 간단히 점심 먹을 수 있는 장소를 찾았다. 지하 세미나실 복도에 휴식할 수 있는 쇼파가 있었다. 생수도 비치되어 있는 걸 보니 직원들이 차 마시며 쉬는 공간인 것 같았다. 번거롭게 돌아다니지 않고 빠르게 손쉽게 요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주변에 식당들이 잘 보이지 않아 준비해 오길 잘 했다 싶었다.
미술관은 1실과 2실로 나뉘어서 1실은 도자기와 함께 고미술품들이 있고, 2실은 현대미술품들이였다.
미술관안에서 사진촬영이 안되어 찍을 수 없지만, 그것이 오히려 가슴에 넣고 머리에 넣을 수 있어 그 여운이 오래가는 듯하다. 현대미술품에는 내가 좋아하는 박수근 작품과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김창렬 작품도 있었다.
위 사진은 미술관 안에 인형의 집이다.
1전시실은 4층에서 계단을 내려오며 관람하게 되어 있다. 계단이 나선형으로 휘돌아내려가는데 계단도 독특한 예술품같았다. 이 곳에선 사진 촬영이 되어 사람들이 찍고 있었다.
야외전시장으로 나왔더니 갑작스런 더위로 헉헉거렸다.
리움미술관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거미조형물.
거대거미 두마리. 이 거미 두마리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잠깐 해 봤다.
숙제를 위해 한 컷 찍고. 야외에서는 자유로이 찍을 수 있다.
미술관을 빠져나와 오랜만에 이태원 거리를 지나면서 많은 외국 간판과 외국인을 구경하면서 한남대교를 건너 고속버스터미널쪽으로 넘어왔다. 센트렅영화관에서 4시 20분에 하는 명탐정코난극장판을 보기 위해서다. 물론 애들만 보고 어른은 '해운대'를 보려고 했는데 우린 적당한 시간대가 없었다. 못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예매는 안 했는데 만화영화는 다행히 8석이 남아 있었다. 애들은 보러 들어가고, 우린 일단 이 번화한 곳을 빠져 나왔다.
주변에 1시간 반정도 쉴 만한 곳을 둘러보았는데 길 건너에 지은지 20년은 넘어보이는 허름한 옛날 건물 지하에 생맥주집이 있었다. 생맥주에 번데기 안주. 학교다닐 적 생각이 났다. 큰 길 하나를 두고 이렇게 분위기가 차이가 났다. 장사가 안 되어 에어컨대신 선풍기만 돌아가고 손님은 아마 그날 우리밖에 없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번잡한 곳을 피하다보니 너무 설렁한 곳에 와 버렸나 싶었지만 대형마트, 대형매장이 들어서면서 소규모 영세업자들이 점점 그 기반을 잃어가는 모습을 안타깝게 느끼며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는 것에 위안삼았다.
남편은 목만 축이고 나는 오랜만에 생맥주와 번데기 안주로 추억의 향수에 젖어 보았다.
아련한 젊음이여...
영화를 보고 서울 한복판으로 진입했다. 먼저 인사동에 있는 숙소(아는 분이 오피스텔을 내주셨다. 주말에는 비워두는 곳이라)에 집을 부리고, 남편 친구를 만났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남편은 주어진 시간 속에서 최대한 여러가지를 채울려는 경향이 있다. 난 좀 한가로이 인사동 길을 거닐다가 내키는대로 밥집에 들어가서 먹고, 낮에 못 본 영화를 야간에 가서 보는 것도 괜찮을 듯 했는데 뭐, 운전까지 해서 길잡이 노릇을 하니 하고자 하는대로 지켜보았다. 일단 친구를 만나 맛난 저녁을 대접받고, 광화문 거리로 나왔다. 광화문 광장이 최근에 만들어져서 빌딩가 식당들이 주말에는 한산했는데 요즘은 정신이 없다고 한다.
이순신동상은 여전히 늠름하게 이 광장을 지키고 있구나!
분수를 만들어 물줄기가 시차를 주면서 뿜어 올라온다. 가까이 가면 시원하다.
돌아오면서 교보문고에 들어가 책 구경도 하고, 애들 사고 싶은 책도 한 권 샀다.
그리고 또 걷다가 도저히 더워서 택시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니 밤 10시경이 되었다.
넷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다음 날 아침 아침밥 해결을 위해 인사동 거리로 나왔다. 예상했던대로 아침 9시에 식당문을 연 곳은 없었다. 그래도 여기저기 구경을 하면서 걸었다.
한 식당앞 조그마한 정원.
드디어 찾은 곳. 인사동을 벗어나와 낙원상가 바로 옆. 남편이 언젠가 TV에서 본 적이 있는 곳이라면서 꼭 한 번 먹어보고 싶은 국밥집이라고 한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잘 온다는 곳이란다. 현빈이보고 예술가가 되려면 예술가들이 먹는 밥도 먹어봐야 된다면서 안내를 앞장섰다. 하긴 벌써 30분을 헤매고 그냥 편의점에서 우유에 빵이나 먹자고 분분하게 의견이 나온 터라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래도 서서 빵먹는 것보다는 앉아서 밥먹는 것이 낫겠지.
국밥은 예나 지금이나 1,500원이다. 반찬은 깍두기 하나. 특별한 맛은 없어도 약간 칼칼하게 끓인 솜씨가 오래도록 숙성된 맛이라고 할까? 원래 우거지국을 좋아하는 우리 애들이 군소리 안하고 잘 먹었다.
애들에게 맨날 좋은 음식, 맛난 요리집만 찾다가, 어쩌다 이런 경험도 있어야 어딜 가서도 잘 적응할 것 같은 의미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가난한 예술가는 잘 안 보이고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셨다. 이른 시간인데도 손님이 많았다.
다른데서는 한끼 식사값인데 그 가격에 4명이서 아침식사를 치른 것도 꽤나 뿌듯했다.
평창내려가는 길이다. 전날 서울빠져나온 차들이 다시 들어가는 모습이다. 돌아갈 때 줄은 끝날 줄 모른다.
이번 나들이는 차가 막히지 않고 순조롭게 움직여 주어서 비교적 편안했다.
잠깐 만날 사람도 있고 해서 잠시 봉평 무이예술관에 들렀다. 옛 폐교에 예술가들이 모여 살면서 아뜨리에처럼 쓰고, 또 예술관 관리와 작품 전시를 하곤 한다. 간간히 공연도 한다. 이곳에는 '층층나무찻집'이라는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 예술관을 찾는 이들의 다리 휴식과 함께 다양한 음료와 차를 마실 수 있는 운치있는 공간이 되고 있다. 여름에는 팥빙수가 정말 먹을만 하다. 도자기와 설치미술을 하시는 작가 분이 직접 만들어 주신다.
대나무로 만든 쉼터.
짧게나마 알찬 여름 나들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