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 2009. 5. 26. 16:40

잔인한 5월이 서서히 물러가고 있다. 날짜와 함께 나의 마음에서도 지나가고 있다.

올 해 1월부터 시작한 백팔배가 백일을 지나고 순조로이 흘러가는가 싶더니

5월이 되어서 마가 끼였었다.

 

수련하는 내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수련이 잘 되면 꼭 마가 끼인다."

ㅎㅎ. 정말 그래서인가. 인간이 '아, 이대로 행복하다.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

라고 느끼는 그 순간에 행복은 최고점에 위치한다. 그리고는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한다.

어느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상하의 진폭이 생기면서 끊임없이 운동해 가는 것 같다.

다만, 한 번씩 거듭하면서 그 폭을 조금씩 줄이고 줄여서 '중용'의 길로 접어들 수만 있다면

그보다 성공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국민윤리 시간에 배운 이 낱말이 불혹을 넘은 이 시점에 와서야,

이제서야 그 의미가 가슴에 와 닿는다. 요즘 나는 이 말을 참 좋아하게 되었다.

중용만 지킬 수 있다면...

 

남편과의 싸움이 전에 없이 길게 늘어지고 서로의 무슨 자존심 대결이라도 하듯 왜 그렇게 유치한 논쟁을

벌였는지 모르겠다. 사실 지금 생각하니 창피하고 유치하다고 생각되지 그때는 너무 심각한 고행이였다.

 

참 우습지만, 그 터널을 나온 우리는 또 한 번 성숙해져 간다는 걸 느낀다.

 

그래도 이번에는 마가 끼였다고 느끼든지 마든지 내 마음을 무시하고 그저 백팔배를 이어갔다.

내가 하기 싫은 마음이 태산과 같았지만 해야만 할 것 같은 좁쌀 한 알만한 마음에 의지하여

내 몸을 움직였다.

그 좁쌀이 쌀알이 되고, 콩알이 되어 점점 나의 온 마음에 퍼져가길 바라면서...

내가 믿는 것은 오로지 '내가 백팔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뿐이다.

내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믿음이 있는 한 계속 될 것이다.

 

고 노무현대통령이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라고 남긴 유서의 한 마디는

참으로 폐부에 박혀 들어온다. 절박한 상황에서도 아픔과 고뇌를 평정하려는 마음 자세가 엿보이는

듯 해서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살면서 오직 이것만은 나의 자부심이야 라고 여기는 것이

한 가지쯤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마저 상처투성이가 되면 아마도 더이상 버틸 힘이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최고 지도자였기에 그의 죽음은 더욱 안타깝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5월이 왜 잔인한 달인지 겪고 보고 입으로 옮기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나 나라로나...

5월을 보내면서 난 친구가 보내준 '내가 누구인가라는 가장 깊고 오랜, 질문에 관하여'를 읽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진정 내가 누구인지 좀 더 가까이 가 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