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 2008. 9. 5. 14:04

가을의 전령사라고 불리울 정도로 가을에는 유명인사인 귀뚜라미.

매미가 '맴맴' 우는 여름이라고 말한다면, 의당 가을에는 귀뚜라미가 '귀뚤귀뚤'이라는 어구를 많이 쓴다.

서울 도심의 아파트에는 이제는 우거진 가로수며, 아파트안 나무들에서 서식하는 매미들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한다. 밤에 가로등이며, 네온사인때문에 한 밤 중에도 계속해서 울어댄다고 한다.

그리고 천적이 없는지 그 수도 급격히 늘고 있나보다.

얼마 전 여름에 놀러 오신 분께 들은 이 얘기가 남의 얘기가 아니게 되었다.

바야흐로 가을의 문턱으로 접어드는 이 시점.

고추를 말리면서..., 귀뚜라미가 붉은고추를 좋아하는지는 또 몰랐다.

집 안에 더러 귀뚜라미가 보이긴 했지만 귀뚜라미 앞에는 늘 예쁜 수식어구

-가을의 전령사-가 붙어 있기도 하고 왠만해서는 곤충(물론 파리, 모기는 예외)도

죽이지 않는 터라 대수롭지 않게 지났다.

그런데 이틀 전에 아들 녀석이 새벽 4시에 안방으로 기어들어 왔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에 잠을 잘 수가 없다면서.

그래서 나가서 들어보니 아들 방에서 한 마리가 계속해서 울어대는데 잡을 길이 만무하다.

우리 집은 통나무와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갈라진 통나무 틈 속에 들어가서 울어대는 것이다.

모기향이나 에프킬러를 찾을 요량으로 거실에 불을 컸는데 마침 바닥에 기어나온 다른 귀뚜라미

서너 마리가 눈에 띄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파리채를 잽싸게 거머쥐고는 미안하지만 이때는 파리, 모기처럼

확실한 죄값에 대한 응징을 하듯  후려쳤다. 차마 죽이지는 못했던 것을,

이 날부터는 마치 신의 허락이라도 받은 것처럼 아무 꺼리낌이 없었다.

왜냐? 바로 우리 아들 잠 못 자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넘 잔인한가?

하지만 이날 귀뚜라미를 잡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일단 잠을 깨고 보니 옆방의 귀뚜라미 소리가 계속해서

귀를 자극했다. 모기향에 아직 질식이 안 되었는지 첨 문제였던 그 한마리의 귀뚜라미가 날이 샐 때까지

잠을 설치게 했다. 이만하면 나의 살생의 정당성을 인정해도 되지 않을까?

그저께부터 어제까지 보이는대로 귀뚜라미를 잡았더니 어제 밤에는 좀 덜 했다.

물론 다 해서 열 마리도 채 안 되었지만, 그 수가 적어도 작은 한 마리가 엄청난 파장으로

소리를 전달시키는 것이 과히 놀랄만하였다.

아직 거실에 한 마리가 어느 틈바구니 속에서 울어대지만

바로 옆이 아니라 잠 자는데는 크게 지장을 주지 않았다.  

가을의 저 깊이 속으로 점점 빨려들어가면서 귀뚜라미는 눈에 띄게 늘어나 있다. 

밖에 나가면 온 밭에 귀뚜라미 천지다.

그래도 이제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해가 지면 창문 단속을 잘 해 두어야겠다.

살생을 피할 수 있으면 그 또한 그것으로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