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림재/시골살이 이야기

오대산으로 가는 길

방림재 2008. 3. 1. 08:21

2월의 마지막날. 기나긴 겨울의 쉼이 이제는 끝나가고 있다.

아이들도 곧 개학을 앞두고 있고,

겸사겸사해서 평창에서 가장 자랑할 만한 산, 오대산을 가기로 계획했다.

지난 번 해돋이 때 한 번 얼어버린 애들이 좀 반신반의하는 심정을 가졌으나

걷기가 끝나고 사우나겸 수영장을 간다는 말에 혹해서

설레는 마음으로 일일 여행에 기꺼이 동참했다. 무열이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오대산 매표소앞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침 8시 30분이였다. 무열이 친구 어머니들께서 준비해준 김밥과 샌드위치등을 차 안에서 아침으로 먹었다. 정말 꿀맛이여서 사진 찍을 생각도 못했다. 차는 주차장에 세워두고 여기서부터 걸어들어가기로 했다.

 

오대산 월정사 일주문. '월정대가람' 탄허스님이 쓰셨다는 저 현판글은 언제 보아도 딱히 표현할 말을 찾지 못하는데 이번에도 역시 그렇다. 맺힌 데 없는, 끝간데 없는 듯한, 그와 같은 느낌이랄까.

일주문에 있는 저 기둥을 보면서, 적어도 이 정도 굵기의 나무도 숭례문 복원에 씌여야 되는데 그것도 금강송으로. 그런 나무가 어디있나? 하는 답답한 마음 금할 길 없다.

 

오대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길. 월정사 전나무 숲길. 나무의 수령은 100-200년 정도 된 것들이다. 전나무 숲 그늘은 아직도 눈이 녹지 않고 있다.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고 겨울이면 고즈넉한 외경을 느끼게 한다.  

 

오대산 월정사는 시도 때도 없이 많은 이들로 붐비긴 하지만 특히 봄과, 가을에 관광버스들이 즐비하게 이 곳을 찾는다. 관광버스는 월정사 외곽에 있는 월정사 주차장에 멈추고 월정사만 시간 내에 보고는 다시 버스에 올라 상원사로 먼지를 날리며 달아난다. 늘 그런 코스로 관광을 다니는 걸 보는 날이면 참 안타깝다. 그들 손을 잡아 끌고 이 곳 전나무숲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이 수학여행 온 학생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 길로 접어들면 잠시 내가 사바세계에서 선계의 안개 속에 들어온 듯하다. 실로 너무나 작아지는 나를 느끼면서도 동시에 나 자신이 그렇게 그윽해질 수가 없다. 자연 속에 완전히 들어가면 이미 인간의 느낌이 없어지는 것인가? 아님 본연의 인간으로 돌아가는 듯한 느낌일까?

 

하여간 난 이 길을 너무나 사랑한다. 아마 천 번을 와도 지겹지 않을 곳이다.

 

그 웅장하고 전지전능해 보이기까지하는 전나무도 세월과 풍파의 무게로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공감대를 이루지는 않을까?

2006년 10월에 쓰러졌다는 안내판이 있었다. 잠시 고목의 품에 앉겨 보았다.

 

월정사가 자랑하는 또 하나의 보배. '월정사팔각구층석탑'

 

월정사 경내를 지나서 우리는 계곡을 따라 오대산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의 계곡. 얼음 속에서 졸졸졸 강물은 투명하게 흐르고 있다. 곧 봄이 올 거라는 기대를 앉고.

 

가는 길에 섶다리를 보았다. 애들이 거닐기도 하고 눈싸움도 하고 뛰어내리기도 하고 놀고 있다. 눈이 1m정도 싸인 곳도 있어서 뛰어내리면 푹 꺼져 혹 돌무더기가 있을지 모르는데 위험을 모르고 한 참 열이 뻗치는 나이라 마냥 즐겁다. 

 

특별한 썰매스키. '오대산 산장'.  2시간을 걸어왔다. 애들이 도중에 언제까지 가냐되느냐고 투덜거렸다. 한 8km정도 걸었나? 점심을 여기서 먹으려고 했는데 12시가 아직 안 되었고, 상원사까지 가려고 하자 반발이 불같았다. 현빈이만 아니였으면 그냥 강행하는 건데 현빈이에게는 사실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2시간 걸은 것도 대단한데 여기서 다시 내려가는 길도 2시간이 되기 때문에 오대산장을 기점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잠시 산장앞에서 썰매를 타 본다.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가 무등을 태워주었다.

 

잠시 무등을 탄 뒤 기운을 다시 내어서 걸어보는 현빈. 겨울에도 푸르른 키 작은 뒤 편 산죽이 참 보기 좋았다. 

 

가는 길을 지소로(안동사투리, 가마히 혹은 제대로에 가깝다.)가지않는 머슴애들. 눈밭에 뒹굴고 난리가 아니다. 온 몸을 던져서 논다. 저기 위까지 올라가서는 뒹굴뒹굴해서 내려오는 중이다.  

 

근처에서 산나물 비빔밥을 먹고, 왕복 16Km을 걸은 애들을 데리고 오대산 호텔 수영장에 갔다. 평창군민은 50% 할인이 되어서 너무 좋다. 수영장과 사우나실이 딸려 있는데 먼저 사우나실에 들어가서 모두 몸을 녹인 후 수영장에서 만나기로 했다. 습기가 차서 사진은 더이상 안 되었다.

 

수영장에서도 신나게 놀다가 밖에 나오니 수영장 앞 로비에 당구대가 있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려고 하지 않는 애들. 각자 1000원씩 내더니 하겠다는 것이다. 이 중 한 명이 아버지랑 가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다른 애들을 부추겼다. 한 명만 빼고 전부 첨 접하는 당구인데 모두들 신선한 마음으로 포켓볼을 즐기고 있다. 예전에도 당구를 즐기지 않았다는 무열이 아버지도 애들 덕분에 오랜만에 큐을 잡아 본다. 10분에1700원 하는 당구를 30분 정도 쳤다.

 

이제 일일 여행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 정말 여러가지로 많은 것을 한 것 같다.

아이들의 일상에서의 탈출이 아주 가슴 저 밑바닥까지 시원한 즐거움을 안겨준 것 같아

나 또한 보람되었다.